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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알레산드로 보파, 2010)

by 손끝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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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표지를 보고 비스코비츠라는 앵무새 이야기인 줄 알았다. 책은 171 페이지로 얇은 편인데 한 권 안에 총 20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짧지만 반전과 여운이 강해서 에피소드 사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연재 형식으로 시간을 두고 봤으면 더 재밌게 읽었을 것 같다. 첫 편, 겨울 잠쥐들 무리 속에서 비스코비츠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달팽이 비스코비츠, 세 번째에서 거미 비스코비츠가 등장한다. 동물은 바뀌는데 이름은 똑같다. 심지어 비스코비츠가 늘 감탄하는 환상적인 암컷의 이름도 리우바로 동일하다. 독특한 구성이다. 하나의 비스코비츠가 계속 다른 동물로 환생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홍길동, John Doe 같은 이름일 뿐일까? 


 1년 중 여덟 달을 동면하는 겨울잠쥐 비스코비츠는 깨어있는 동안 살을 찌우고 꿈 소재를 비축한다. 비스코비츠는 지루하고 절망적인 삶이 달콤하고 원대한 꿈을 꾸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세, 즉 깨어 있는 것이 지옥이라면 현세, 즉 꿈꾸는 동안 천국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칙칙한 현실의 배우자 자나가 아닌 환상의 파트너 리우바를 꿈꾼다. 

내 꿈에는 늘 겨울잠쥐 암컷이 나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나는 아니다. 꿈에서나 볼 법한 암컷, 내 환상의 결정체였다.... 나는 그녀를 리우바라고 부른다. (p.14)

"이 모든 일은 오직 내가 상상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생긴 거야, 비스코. '현실의 삶'이 아니야. 내 동면 속 꿈이지. 그래서 너는 늘 나를 꿈꾼 거야. 꿈꾸게 한 게 바로 나지. 너를 놀래 주고 싶어서 너한테 절대 말하지 않았어. 너와 노는 게 재밌었거든." (p.19)

 어느 날 비스코비츠는 현실에서 리우바를 만나고 깜짝 놀란다. 알고 보니 내가 리우바를 꿈속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리우바가 나, 비스코비츠를 꿈속에서 불러낸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꿈꾸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비스코비츠는 행복에 빠지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비스코비츠의 트루 러브 리우바가 등장하고 섹스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뭘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나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편에서 "이제 너는 병원체가 아니다, 비스코. 동물은 죽는단다."(p.164)를 읽고 깨달았다. 동물들에게 섹스는 곧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각 동물들이 가지는 특징을 인간 세계에 맞춰 풍자한 점이 놀랍고 신선하다. 사랑, 돈, 외모, 자아정체성, 본성 등 인간 세계에 대입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주제들이다. 다만 너무 인간의 관점으로 동물들의 행동을 해석한 것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토론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난 동물이야.'다. 그렇다. 난 동물이다. 그리고 우린 모두 죽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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