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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맹》(아고타 크리스토프, 2018)

by 손끝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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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행복했던 기억은 잠시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다.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 남편과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다. 이후 스위스로 이주해 새로운 언어를 만나고 약 5년 간 문맹 상태를 겪는다. 26살에 읽는 법을 다시 배우고 이후 프랑스어로 여러 작품을 쓰고 수상한다. 이 책의 원작은 2004년에 발간되었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p.9)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자랑스러워하지만 나의 독서 병은 대개의 경우 비난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p.13)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읽기를 시작하고 이것을 '병'이라 한다. 읽으며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 문화와 다르다. 나는 어린 시절 친척 집을 방문할 때면 언니, 오빠들의 방에 가 혼자 책을 읽었다. 나는 어떤 비난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칭찬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정말 책을 좋아했었던 건지 다른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 것은 한참 후, 어린 시절을 감싸던 은실이 끊어지고, 불행한 날들이 찾아오고... 부모님과 오빠, 남동생과 헤어져, 이별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해결책이라고는 쓰는 일 밖에 남지 않을 낯선 도시의 기숙사에 들어갈 때. (p.24~25)

'쓰기'는 그에게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자 탈출구이다. 전쟁 이후 모두가 빈곤한 생활을 겪는다. 이런 일은 과거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이다. 전쟁이라니! 2022년에 전쟁이라니.

나는 다른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인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p.49)

...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p.52)

아홉 살에 살던 곳을 떠나 처음으로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후 러시아어가 학교에서 의무화되고 모국어는 금지된다. 난민이 되어 우연히 정착하게 된 도시는 프랑스어를 쓰는 곳이다. 그는 프랑스어로 읽고 쓰는 과정을 평생의 '전투'라고 표현한다.

부동의 삶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p.89)

국경을 함께 넘은 사람들은 난민센터에서 '분배'되어 거처를 제공받고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물질적으로는 전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사회적, 문화적 사막. 결국 일행 중 둘은 징역형이 확실한데도 헝가리로 돌아가고, 다른 둘은 더 멀리 북미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 중 넷이 죽음을 선택한다.
음식 투정이 아니다. 쉽게 연결되고 많은 경험이 허락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빠만 해도 국내여행 중 다른 지역에 가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를 아예 먹지 못했다. 젓갈 냄새 때문이었다. 1950년대 타국의 문화적 차이란 '사막'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p.112~113)

강제로 문맹이 된 사람의 도전.

내가 속한 민족 집단,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글은 나의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전까지 쌓아 올린 내 글과 언어가 무용지물인 곳에 떨어지게 되면 나는 나의 정체성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 너무 당연해서 몰랐다. 한국어로 마음껏 말하고 쓸 수 있는 자유를. 근데 왜 쓰질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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